신앙생활의 본질과 사역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3:15)
매우 기뻐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물을 것입니다.
‘무슨 기쁜 일이 있습니까?’라고.
그때 그 사람이
‘방금 미국에 있는 아들로부터 소식이 왔는데
하버드 대학 4년 장학생이 되었다’라고 대답한다면
그의 마음속에 있는 기쁜 소식이 그의 얼굴에 기쁨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누가복음 24:19 보면
슬픈 기색으로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는 두 사람에게
주님은 ‘무슨 일이냐?’(눅24:19)고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눅24:21)고
만일 어떤 사람에게 기쁨이나 슬픔이 있다면
그 사람의 마음속에는 그로 하여금 기뻐하고 슬퍼하게 한 어떤 일,
사건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 만나서 속에 있는
그 이야기를 나누며 그것을 공유하고 기쁨과 슬픔을 공감하는 것을
교제라고 합니다.
속에 아무런 이유없이 기뻐하거나 슬퍼한다면 그 사람의 마음은 고장이 난 것입니다.
이 영적원리를 가지고 다음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3:15)
①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인이 되면 나타나는 열매가 있습니다.② 그러면 사람들은 그 열매를 보고 우리에게 물을 것입니다.③ ‘너희 속의 무엇이 그런 열매를 맺게 했느냐’고...
이것을 복음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①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② 그 기쁜 소식은 반드시 기쁨이라는 열매를 맺게 합니다.
③ 만일 그 기쁨이 없다면 마음속에 복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주님과 엠마오로 가던 두 사람의 대화입니다.
주님 : ‘무슨 이야기를 하니?’(눅24:17)
글로바 : ‘아니 예루살렘에 살면서 그 일도 모르느냐?’(눅24:18)
주님 : ‘무슨 일이냐?’(눅24:19)
우리는 이어지는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책망하시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자기들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바꾸었고
그들이 생각을 바꾸자
그들의 마음에 슬픔은 사라지고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두 사람의 문제는 무엇이었습니까?
일어난 십자가 사건에 대한 해석이 문제였습니다.
우리는 두 사람이 한 그런 해석을 ‘자의적 해석’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주님은 성경으로 십자가 사건을 재해석해 주셨습니다.
그것을 ‘가르침’이라 하고 ‘사역’이라 합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목사로서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설교자가 자주 빠지는 함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말을 잘하는 것 = 설교를 잘하는 것’이라는 함정입니다.
① 설교는 성경 본문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② 해석이 잘못되면(자의적 해석) 그 결과는 재앙입니다.
③ 해석을 잘못하면서 말을 잘하면 그것은 더 큰 재앙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하는 다음 권면은 모든 설교자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말씀입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