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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과 부탁의 차이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21-08-15 09:37:55 조회수 509

제목 : 명령과 부탁의 차이
본문 : 몬1:8-10

8절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9절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10절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몬1:8-10)

빌레몬서는 사도 바울이 빌레몬이라는
사람에게 보낸 개인적이고 사적인 편지 한 장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편지 한 장을
성경 66권 속에 넣어 우리로 읽게 만드셨습니다.

그 사실은 우리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즉 사적이고 개인적인 편지임에도 불구하고
그 편지는 개인적인 편지 이상의 영적인
의미를 담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또한 약 이천 년 전에 사도 바울이 빌레몬에게 보낸
한 장의 편지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감옥에서 주님께 인도한 사람 중
한 사람이 오네시모였는데, 그는 빌레몬에게
피해를 끼치고 도망친 빌레몬의 종이었습니다.

그 당시 노예제도는 종의 생명이 주인에게
달려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빌레몬은 자기에게 피해를 끼치고 도망을
친 오네시모를 죽일 수도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런 빌레몬에게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를
용서하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즉 빌레몬서가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는 아주
중요한 메시지는 바로 사랑과 용서입니다.

빌레몬서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바울과 빌레몬 그리고 오네시모입니다.

이들 세 사람은 각기 다른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선처해 달라고
부탁하는 입장이고, 빌레몬은 오네시모를 용서해 주어야
할 입장이며,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용서를 받아야 할 입장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가 보면 때로는 바울의 입장과 위치에,
아니면 빌레몬의 입장과 위치에, 그리고 어떤 때는
오네시모의 입장에 처할 때가 있음을 봅니다.

그때 만일 나라면 어떻게 하였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빌레몬서를 읽는다면 본문이 새롭게 다가올 것입니다.

오늘은 빌레몬서에 나타난 여러 영적인 교훈들 중 하나인
명령과 부탁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본문 8절에 ‘이러므로’와 이어서
‘명할 수 있으나’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리고 9절에 ‘도리어 간구하노니’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두 구절 속에 나오는 단어들을 이어
한 문장으로 만들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러므로 나는 명할 수 있다.
그러나 명하지 않겠다. 그 대신 부탁하겠다.

즉 바울은 충분히 명령할 수 있는
이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부탁을 합니다.

명령할 수 있는데 부탁을 하는 것은
부탁할 이유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빌레몬서에서
다음 사실들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① 바울이 빌레몬에게 명령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②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탁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울은 빌레몬에게
명령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부탁을 합니까?

우리는 이 모든 질문들의 답을 본문에서 찾을 수 있는데,
바울이 명령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탁을
하는 이유는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사랑으로 인해 명령이 아닌 부탁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문에서 바울을 통해 본
사랑의 정체를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명령할 수 있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바울은 자신이 빌레몬에게 명령할 수 있는 이유를
‘이러므로’라는 단어를 가지고 설명합니다.
‘이러므로’라는 단어는 5-7절에 대한 결론입니다.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몬1:5)

바울은 예수님과 성도에 대한 빌레몬의
사랑과 믿음을 이유로 제시합니다.

이것은 빌레몬이라고 하는 사람에게 있었던 이유입니다.
주님과 성도를 사랑하는 빌레몬이기에 내가 그러한
명령을 해도 반드시 들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으므로
그러한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빌레몬이라고 하는 사람은 참 대단한 사람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바울에게 있었던 이유로
바울은 자신의 신분, 나이, 환경,
그리고 과거 빌레몬과의 관계를 들어 설명을 합니다.

바울은 빌레몬서에서 자신이
주님을 위하여 갇혔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리고 나이를 말하고 지난 날 자신에게
받은 사랑을 생각해 보라고도 말합니다.

이러한 이유들이 바울로 하여금 빌레몬에게
명령할 수 있게 할 충분한 이유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명령이 아니라
부탁을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본문은 답을 아주 간결하게 말합니다.
‘사랑을 인하여’라고.

우리는 여기서 사랑의 정체, 위대함을 보게 됩니다.

사랑은 바울로 하여금
명령을 부탁으로 바꾸게 만들었습니다.

즉 사랑은 바울로 하여금 권리를 포기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문을 통해
바울로 하여금 명령을 부탁으로, 권리를 포기하도록
했던 사랑의 정체에 대해 잠깐 살펴 보았으면 합니다.

때로는 사랑이 우리로 입을 다물게 합니다.

사랑은 우리로 입을 열게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로 입을 다물게도 합니다.

얼마든지 할 말은 많지만, 그리고 할 수 있는 입장이지만,
때로는 사랑으로 인하여 우리는 입을
다물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입을 다물지 못하고 하고 싶은 모든 말을 다 해버리면
마음은 시원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우리 속에 계신
성령님의 탄식 소리를 들어야만 합니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이 아니라 상대방의 유익을 구합니다.

본문 14절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깊게 묵상해야 할 말씀입니다.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로라(몬1:14)

바울은 빌레몬의 경계선을 침범하지 않고,
그의 자유의지를 존중해 주었습니다.

바울은 억지로 하는 것과
자원함으로 하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안 사람이었습니다.

누구에게 명령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자유의지를 무시하고 경계선을
침범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을 사람들은 상처라고도 부릅니다.

명령을 하면 간단해 보입니다.
그리고 명령을 하면 모든 것이 빨리 처리되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부탁을 하면 부탁을 하는 내 자신이 약해 보이고,
일이 빨리 빨리 처리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부탁하거나 기다리는 것보다
명령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그렇게 명령을 하는 것이 멋져
보이고 효과적으로 보일지라도, 계속 명령만을 하다 보면
사랑이 설 자리가 없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충분히 명령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탁을 하는
본문 속 바울을 보면서 우리는 영적 성숙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명령과 폭력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우리에게 귀한 것이 있다면 바로 사랑의 회복입니다.

사랑이 회복될 때에 명령과 폭력은 사라지고
진정한 겸손과 온유, 그리고 섬김이 회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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